2009년 06월 14일
명동의 역사
조선 초기에는 한성부 남부 명례방·훈도방 지역에 속했고, 일제강점기에 명치정1정목, 2정목정회가 설치되었다.
1946년 명동1·2가동으로 바뀌어 명동1·2가와 충무로1·2가 일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였다.
1955년 명동1가는 명동사무소의 관할 구역이 되었고, 1970년 주민 감소로 인하여 남산동1~3가와 초동 관할의 저동1가가 명동사무소의 관할 구역으로 통합되었다. 1985년 예장동의 일부 지역도 명동사무소 관할로 통합되었고, 1998년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장교동, 무교동, 태평로1가, 을지로1·2가, 남대문로1·2가 일부, 삼각동, 수하동, 수표동을 통합하였다.
이 동은 장교동, 무교동, 다동, 태평로1가, 저동(苧洞) 1가, 을지로1·2가, 충무로 1 ·2가, 남산동 1∼3가, 예장동 일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를 상징하는 번화가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지금의 충무로인 본정(本町)보다 낙후된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주택가였으나 일제강점기 충무로가 상업지역으로 발전하면서 인접지역인 이곳도 그 영향을 받아 상가로 변하게 되었다.
1946년 명동1·2가동으로 바뀌어 명동1·2가와 충무로1·2가 일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였다.
1955년 명동1가는 명동사무소의 관할 구역이 되었고, 1970년 주민 감소로 인하여 남산동1~3가와 초동 관할의 저동1가가 명동사무소의 관할 구역으로 통합되었다. 1985년 예장동의 일부 지역도 명동사무소 관할로 통합되었고, 1998년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장교동, 무교동, 태평로1가, 을지로1·2가, 남대문로1·2가 일부, 삼각동, 수하동, 수표동을 통합하였다.
이 동은 장교동, 무교동, 다동, 태평로1가, 저동(苧洞) 1가, 을지로1·2가, 충무로 1 ·2가, 남산동 1∼3가, 예장동 일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를 상징하는 번화가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지금의 충무로인 본정(本町)보다 낙후된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주택가였으나 일제강점기 충무로가 상업지역으로 발전하면서 인접지역인 이곳도 그 영향을 받아 상가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종마루[鐘峴]에는 한국 가톨릭의 총본산인 명동성당이 있는데, 유신독재 등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인사들의 각종 집회와 농성, 피신 및 단식장소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들어 시위가 잦아 낭만적인 모습을 잃었으나 해마다 명동축제를 개최하는 등 1990년대 후반 들어 옛모습 되찾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 by | 2009/06/14 22:16 | 명동은? | 트랙백 | 덧글(0)





